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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님 노래

이승철

1. 경력[편집]


부활의 2대 보컬이자 1집 보컬로 데뷔. 부활의 1대 보컬이었던 김종서가 부활로 활동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탈퇴하게 되자[4] 김태원은 부활 공연을 팬이자 스텝 겸으로 따라다니던 아는 동생 이승철에게 새 리드보컬을 구해야하니 좀 도와달라고 했는데, 이승철은 본인이 보컬로 부활에 들어가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을 했다.[5] 그래서 이승철에게 노래를 시켰는데 생각보다 잘 했고,[6] 몇 차례 객원보컬 형식으로 쓴 후 정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승철의 홈피에 가보면 자신이 김종서의 후임으로 임명된 것은 어머니의 돈줄 때문이었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적어놨으며, 해피투게더에 출연해서는 처음에는 거절당했으나 당시 교사였던 어머니에게 1년 연봉만큼의 돈을 빌려서 음악 장비를 준비했더니 받아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7] 그리고 이 때부터 김태원과 이승철의 수십년에 걸친 애증관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데뷔 때부터 부활은 희야로 메가히트를 치게 되고, 당시 최고의 대중성을 지닌 록밴드로 떠올랐다. 다만 밴드의 특성상, 다른 멤버에 비해 이승철이 얻는 관심이 90%에 달했다. 어느 정도냐면 부활하고 김태원은 몰라도 이승철만 아는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로, 예능에 김태원이 나왔을 때도 이승철이 밴드에 들었었냐라는 말을 들었다. 한마디로 밴드 부활이 아닌 이승철의 밴드였다는 말. 당시 이승철은 잘생긴 외모덕에 여성팬도 많았으며, 노래 외에도 각종 TV/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수준급의 입담을 과시하며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몇년 지나 김태원이 마약 복용으로 인해 교도소에 가고, 이승철이 팀을 떠나면서 부활은 허무하게 해체된다. 그런데 이 부분은 김태원과 이승철의 말이 갈리는데, 김태원은 이승철이 떠나 해체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승철은 매니저의 CF 출연료 착복으로 합의하에 부활을 해체하고, 다시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된 밴드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김태원이 마약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이승철의 말이 맞다. 이는 이후 당시 매니저였던 백강기씨가 본인의 블로그에서 부활을 해체하면서 더이상 부활이라는 밴드이름은 쓰지 않고, 김태원은 '더 게임'으로, 이승철은 솔로로 활동하기로 합의봤다라고 포스팅한 바 있다. 단, 이승철은 손무현과 '걸프렌드'라는 그룹을 결성했다가 이후에 솔로로 데뷔했다.

이승철은 솔로로 데뷔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 와중에 대마초를 피우다 걸리는 바람에 구속되어 몇 년간은 방송 출연까지 금지당한다. 그런데 방송출연이 없는 와중에도 꽤 인기를 유지했다. 농담반진담반으로 이 기간에 박명수가 이승철 흉내를 내고 다녔고, 그래서인지 잊혀지지 않았다고. 이승철 본인도 방송에서 박명수와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자신을 흉내내주던 박명수에게 고마움을 표하곤 했으며, 당시에도 박명수가 1999년 자신의 솔로 1집에 수록한 이승철의 대표곡인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노래를 듀엣으로 부르자는 제안에 이승철이 흔쾌히 수락해주어 상당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명수 역시 이런 이승철의 도움이 자신에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이라고 회고하기도. 이후 이승철 딸과 박명수 딸이 같은 유치원에 다니기도 해 친해졌다고 한다.

이승철이 이렇게 되는 동안 부활은 비운의 보컬 故 김재기를 영입하기까지 매우 힘겨운 시간을 걷게 된다. 3집도 이승철이 불렀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부활의 명곡 '사랑할수록'도 이승철의 곡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후 2002년에 다시 부활과 뜻을 모아 스페셜 음반을 발매하는데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이 그 유명한 '네버엔딩스토리'다. 그리고 이 음반이 반응이 좋자 정규 8집 앨범 '새벽'이 된다. 하지만 8집을 끝으로 그는 다시 부활을 떠나 솔로활동을 하게 된다.

1990년대에는 신승훈이나 김건모에 밀렸다는 평이 많았지만, 2000년대 이후 동시대 가수들이 잊혀져가는 동안에도 꾸준히 히트곡을 내놓으면서 평가가 높아졌다. 1986년 데뷔 이래 부활의 보컬로 활동해서 낸 앨범을 포함해 총 14개의 정규 앨범을 내고, 콘서트도 2000회 이상 연, 앨범과 콘서트를 꾸준히 병행하고 있는 몇 안되는 가수 중 한명. 그리고 슈퍼스타K를 비롯해 방송 활동도 동년배 가수들에 비해 잦은 편. 또한 OST는 좋았다의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는 비천무의 '말리꽃' 이후로 영화나 드라마의 OST 분야에서도 '인연',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 사람' 등이 호평을 받으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2. 가창력[편집]

전성기 기준 우리나라 보컬계에서 톱클래스 위치다. 90년대 수많은 히트곡부터 2002년 '네버 엔딩 스토리'로 한참 활동할 당시에는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보컬 소리도 심심찮게 들었다. 가창력 하나만 논하자면 복식호흡과 깔끔한 발음(딕션)의 본보기.[8]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해서 본인이 직접 말한바에 의하면 한창땐 대표곡 중 하나인 마지막 콘서트의 하이라이트 부분 "밖으로~ 나가버리고오오오오오오오~(...)"를 50초까지도 끌어봤다고 한다.[9] 흠좀무. 복식호흡은 이승철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박명수가 종종 흉내내어 '복식호통'을 치는 자신의 기믹으로 삼은 바 있다. 실제 목소리가 닮았다카더라.[10] 또 곡 해석력이 뛰어나서 슬픈 노래라고 무작정 흐느끼지 않고 절제해서 부르는 능력이 탁월하다. 다만 이 부분은 절친 신승훈이 농담 삼아 디스를 한 적이 있는데, 본인은 노래가 끝나고 여운을 주지만 이승철은 성격이 급하다보니 바로 웃으면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해서 감동을 깬다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왕이란 호칭으로 불리는 조용필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보컬. 단, 이혼 이전의 전성기 시절 이야기로 "조용필의 뒤를 이어서 누가 공연계의 제왕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답하면서 한 말이다. "그래도 승철이가 느낌을 좀 살리지 아마?". 일반 대중들의 인식 속엔 여전히 포스트 조용필로 이승철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으며[11] 이것조차 세월이 지나서 요즘엔 포스트 이승철을 논하는 시대가 왔다. 대중들 사이에선 김나박이가 흔히 거론된다.[12] 정작 이승철은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나와 포스트 이승철로 신승훈을 지목했다.친구 디스 또한 임재범은 가요계에서 본인의 라이벌로 꼽을만한 가수는 이승철과 조관우 둘뿐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칭찬에 인색한 임재범 성격을 감안하면 칭찬에 후한 편인 조용필에 비해 어찌보면 더 희소성 있는 칭찬일지도.

부활 데뷔 초에는 락보컬이었고, 현재의 음색과는 달랐다. 미성이면서도 지금보다 훨씬 허스키했고, 쇳소리까지 냈다. 사실 지금도 소녀시대 같은 곡들을 부를땐 쇳소리가 난다. 그래도 타고난 미성이었던지라 1집 수록의 '인형의 부활' 같은 경우는 '연주는 좋은데 보컬 목소리가 너무 애다'라는 평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음색은 허스키한 맛은 사라졌지만 더욱 아름다워졌다고 봐도 무방.

그러던 것이, 이제는 가창시 가성 사용이 늘어나면서 데뷔 초 보여줬던 날카로운 미성의 고음은 잘 듣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8집쯤을 기점으로 눈에 띄게 목소리와 사운드를 경량화하기 시작했고, 10집 즈음해서는 확실히 힘이 많이 빠졌다. 물론 전성기와 비교할시 그렇다는거지 아직도 가수로서의 가창력은 뛰어난 편이다. 2010년에 있었던 25주년 콘서트에서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승철의 팬이라면 '말리꽃' 무대는 필견. 이젠 본인도 가창력을 전면으로 드러내기보다는 편하게 감정을 살리는 방향을 목표로 하는 듯 하다. 이승철 본인도 대중과 가수 본인이 선호하는 창법에 대해 괴리감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걸 보면 일부러 바꾼 측면도 있는듯 하다. 팬에 따라선 오히려 지금의 창법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으니 취향차인듯.

사실 이승철의 음역대가 낮은건 결코 아니지만, 초고음을 지르는 락커들처럼 엄청 높은 것도 아니다. 물론 한창 젊은 21살 부활일때 희야 라이브에서 진성으로 3옥타브파까지 냈었다. [13] [14] 하지만 그럼에도 이승철의 가창력이 이토록 평가받는 이유는 자신의 음역대 안에서 저음과 중음, 고음 가릴 것 없이 음색의 질이 거의 변하지 않고 소리를 편하게 내기 때문인데, 이건 이승철 노래만 들을땐 그저 듣기 좋다 정도로만 여기고 간과하기 쉽지만, 이승철 곡을 다른 가수들이 목에 핏대 세워가며 부르는 경우와 비교해보면 확연히 티가 난다. 이른바 '말하듯이 노래한다'는 말의 표본일지도.

가끔 가다 유튜브를 보면 원키로 자기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이승철은 과대평가된 가수다라고 말하는 주로 고음병 걸린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원키로 소화한다고 무조건 노래를 잘 부르는게 아니다. 원키로 소화하든 1키를 낮추든 몇 키를 낮추든 감정을 잘 살려서 청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면 그게 노래를 잘부르는거다.

쇼프로에 나와서 하는걸 보면 목을 정말 애지중지하는 편.아니 그러신 분이 녹음 때까지 술을 그러나 조용필이나 이선희가 5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쩌렁쩌렁' 울리는 보이스를 가지고 있는 반면, 이승철은 상대적으로 힘이 많이 약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반대로 사실 이승철은 한국에서 목소리를 잘 보존한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위에서 비교대상으로 언급된 사람 중 한명인 이선희는 제자인 이승기도 밝힌 바 있듯이 사생활에서 반찬과 물 마시는 것조차 극도로 조심할 정도로 목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스타일인데 반해, 이승철은 술과 담배를 지속적으로 해온 사람이다.대마초는 덤(...) 그러면서도 정말 많은 공연을 소화하는 가수인 것. 다만 담배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부턴 10년 넘게 금연 중이라고 한다.

미성이라서 잘 부른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으나, 미성은 단지 타고난 음색일뿐 유지하는게 공짜로 그냥 되는건 아니다. 유영석, 윤종신처럼 활동초기 미성으로 평가받던 가수들의 전성기와 지금이 얼마나 다른지 상기해보자. 타고난 미성만으로 노래하는 가수는 중년의 나이대에 망가지기 쉽다. 오히려 임재범 같은 허스키 보이스가 의외로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미성으로 타고났더라도 조용필이나 신승훈처럼 관리만 잘하면 오래가기도 한다. 애초에 목소리가 변한다는것 자체가 성대에 '상처'를 입히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 그러니 성대 수술까지 해야했던 유영석의 경우나 적극적으로 술, 담배를 하면서 목소리가 변하는 과정이 여실히 드러난 윤종신의 경우처럼 확실한 경우가 아니라면 함부로 속단하거나 적용하지는 말자.

가성 사용과 관련해 평가가 박한 편이지만, 이승철 특유의 발음처리로 회자되듯 전반적으로 '부드러움'을 추구한 결과일 뿐이며 이 또한 가창 테크닉, 즉 창법의 일환이다. 인터넷에서 세분화된 발성강좌가 널리 퍼지면서 지나치게 세밀한 분류가 일반화됐는데, 그냥 일반적으로 전문적인 보컬들이 논하는 '가성'은 흔히 말하는 두성부 발성을 이야기한다. 두성(가성) 아니면 흉성(육성/진성). 이 두 분류만으로 이야기하는게 일반적. 애초에 직접 대면해서 가르치는데 단어로 세분화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용어를 세분화해봐야 혼란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만약 흔히 이야기하는 '그냥 호흡만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가성만으로 계속 발성한다면 결과적으로 성대에 타격을 줘 목소리의 성질 자체가 변해버리게 된다. 물론 대중가수는 마이크의 도움없이 두성만으로 노래해야 하는 성악가가 아니기 때문에, 섬세한 표현을 위해 목에 타격을 주더라도 일부러 그런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승철처럼 콘서트를 계속하는 공연 주력 가수가 발성을 못해서 그런 가성으로 처리한다는건 알맞지 않는 분석. 초창기 쩌렁쩌렁하다 못해 카랑카랑하기까지 하던 고음처리에서 현재의 부드러운 처리로 취향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는게 맞는 평가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스테미너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건 뭐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거다. 오히려 쉰이 넘어서도 수준급 노래와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한 가수이기는 하다.

녹음할 때는 곡의 분위기에 맞는 술 한 잔 정도 걸치고 '한번에' 간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정박에 익숙한 사람이 듣기에는 미묘하게 박자가 빠르거나 느리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곡 중에서는 '말리꽃'의 경우가 대표적.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지만, 이승철 특유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다만 11집 인터뷰 원테이크 녹음 방식을 버리고 여러번 끊고, 다시 들어가면서 공들여 녹음하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김연우, 박선주 등의 보컬 트레이너 10명을 대상으로 한 시대별 국내 최고의 남녀 보컬리스트 설문조사에서 1990년대 부문에서 김건모, 임재범에 이어 3위를, 2000년대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같이 진행한 시대/성별을 막론한 최고 보컬리스트 부문에서 조용필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간발의 차로 임재범이 3위. 또한 음악전문가 20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 부문에서는 조용필의 뒤를 이어 2위, '기술적 능력이 뛰어난 가수' 부문에서는 단독 1위, '감성적 능력이 뛰어난 가수' 부문에서는 김광석, 김현식, 김동률과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문화일보에서 조사한 '지난 20년 국내 최고의 가수' 설문조사에서는 조용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같이 진행한 '지난 20년간 최고의 노래' 설문조사에서는 이승철이 부활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부른 '네버 엔딩 스토리'와 '희야'가 각각 2위와 4위를 차지했다. 1위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유난히 2위가 많이 보인다면 기분탓이다 그런데 디시 등지에선 오히려 용필이 형 평가가 박하다.

 


3. 슈퍼스타K[편집]

엠넷의 슈퍼스타K 시리즈에 지속적으로 심사위원으로 출연. 특유의 독설 판정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칭찬 또는 '취향을 타는 것 같다'는 식의 말들을 앞에 깔아둔 뒤, 마지막에 '제 점수는요' 하면서 뒤통수를 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자기가 아니다 싶으면 아닌 스타일인듯. 슈퍼스타K 시즌1 결승에 불참했는데 이를 두고 자신이 반대하던 서인국이 결승에 올라가서 빡쳐서 안나왔다는 루머까지 있었을 정도.

슈퍼스타 K2 2차 본선이 있기 며칠 전엔 이승철의 녹음실이 침수되기도 하였다.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로 인해 빗속에서를 부른 존박이 피해봤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평소보다 별로였다고 평한 장재인의 점수가 89점이였고, 잘했다고 평한 존박의 점수가 89점이였다. 응..?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린 적도 있다. 하지만 자백하신 그 모습만큼은 보기 좋았습니다. 제 알콜 농도는요.

K3에 오면서부터는 그 '특유의 독설'이 많이 사라지고 과거에 비해선 보다 부드러운 평가를 하고 있다. 신청자들에게 맞춤 심사를 한 짤방이 매우 웃긴다.

그러나 K4에서도 가끔 잉여력이 대폭발했는데 대표적으로 참가자 김민준이 김광진의 편지를 불렀는데 "야 노래 좋다. 그거 누구 노래냐??"(...) 싸이는 정말로 당황해했고 시청자들도 어이없었던 것이 작년 K3에서 이정아가 '김광진의 편지'로 생방송 첫 무대를 했다(!). 그걸 차치하더라도 김광진이라는 이름은 한국 음악사에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는 중요한 가수 가운데 한 명이다.나 아니면 다 듣보야! 그리고 이후 '이승철팬'이라는 이름의 유동닉이 수많은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일부러 보란듯 그랬나부지ㅋ 김광진이 연대 나오고 미시간 나와서 해외파라 빽 좀 있으니까 PD들 인맥도 좀 있고 솔까 슈스케3에서 크리스, 이정아, 버스커까지 김광진 노래 부를 정도로 메리트 있진 않았는데? 김현철, 윤상, 김건모, 윤종신, 유희열, 신승훈, 윤건 등등 가수가 얼마나 많냐? 빽이지.. 이승철이 훨 낫다 가식적이지도 않고'라는 댓글로 커버를 치기도 했다. 싸이 답글도 일일히 다는데 혹시..(?) 사실 그냥 어그로 그리고 유명한 짤방인 어서와가 나온 시리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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